발견된 어금니는 10대 청소년의 것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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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노윤서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5-06-19 12:59본문
삼성역마사지 삼근왕은 불우한 임금이었다. 할아버지인 21대 개로왕(재위 455~475)은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도주 중 고구려군에게 피살됐다. 아버지 22대 문주왕(재위 475~477)은 웅진으로 도읍을 옮겨 백제의 명맥을 이었으나 귀족인 해씨 세력에게 살해당했다. 만 12세에 삼근왕이 즉위하고 해씨의 반란이 진압됐으나
삼성동마사지삼근왕은 곧 사망했다. 새롭게 권력을 잡은 진씨 세력이 정치적 변란을 일으킨 결과로 해석되기도 한다. 어려서 죽은 삼근왕은 후사가 없어 개로왕의 직계가 끊기고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이 24대 동성왕(재위 479~501)으로 즉위했다.
2호분의 주인이 삼근왕이라면, 나란히 조성된 1~4호 무덤에 묻힌 사람들은 개로왕의 직계인 아버지 문주왕을 비롯해 가까운 혈연 관계에 있는 왕족들로 추정된다고 연구소는 밝혔다. 개로왕 직계가 아닌 무령왕의 무덤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.
어금니와 함께 새로 출토된 부장품은 그 같은 정치적 혼란기 속에서도 수준 높은 백제의 금속공예 문화를 보여주고 있었다. 가장 돋보이는 금귀걸이 한 쌍은 길이 6.5㎝로,한 점만 완전한 형태로 남았다. 가운데 부분에선 줄무늬 장식이 새겨진 그물 모양의 씌우개 안에 청색 유리옥을 넣은 정교한 유물로서, 고도의 금 세공 기술이 드러난다.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“6세기 초 무령왕비 귀걸이의 원형을 나타내는 뛰어난 제작 기술”이라고 평가했다..